가문을 빛낸인물
분 류 금주인물
세(世) 29
파(派) 임당공 유길파
정인보(寅普)

 

 

동래정씨 홈페이지에서는 교육자이자 민족사학자며 국혼(國魂) 환기운동을 전개한 담원 정인보(鄭寅普) 公을 동래정씨 홈페이지 금주(今週)의 인물, 첫번째 인물로 선정하였다.

조선 명종대(明宗代)의 대제학 휘 유길(惟吉)의 후손으로, 철종대의 영의정 휘 원용(元容)의 증손 인 장례원 부경(掌禮院副卿)· 호조참판을 역임한 휘 은조(誾朝)의 아들이다. 유명(幼名)은 경시(景施).자(字)는 경업(經業), 호는 담원(薝園) 미소산인(薇 蘇山人). 아호는 위당(爲堂)이며 서울 출신이다.

 

公은 1892년에 태어나서 1950년 6. 25 동란 때 서울에서 납북당하여 정확한 사망연월일을 알 수 없다.公은 1910년 일제가 마침내 무력으로 한반도를 강점하게 되어 조선조(朝鮮朝)가 종언(終焉)을 고(告)하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 난곡 이건방(李建芳)선생 문하에 들어가 한학공부를 하였고 중국인 학자 장병린의 국학사상에 접하여 그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얼마 후 귀국하였다가 1912년 다시 상해로 건너가 신채호(申采浩)·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 교포의 정치적· 문화적 계몽활동을 주도하며 광복운동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부인 성씨(成氏)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노모의 비애를 위열(慰悅) 하고자 귀국하였다.

 

1923년 연희전문(연세대학교 전신) 교수로 부임하여 이화여전의 교단에도 섰다. 1926년 조선왕조 최후의 황제 순종이 승하하자 그 능 비문(裕陵誌文)을 쓰게 되었으나 그 내용이 불온하다는 친일파의 밀고를 받기도하였다.그 뒤 公은 활발 하게 동아일보' 지상(紙上)에 국학 관련 논설을 썼는데 公의 주된 목적은 일제 침략으로 비록 나라는 망했으나 우리 조상들이 남긴 거룩한 문화 유산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겠다는 것과 우리 민족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는 우리 나라 역사 속에도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겠다 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 쓴 公의 글은 이 같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쓴 논설로 볼 수 있다. 첫째, 조선 고전해제를 신문에 연재하였고, 둘째로 우리나라 역사가 낳은 큰 인물로 시조 단군과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임진왜란 때 거북선으로 왜구를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그리고 조선왕조의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농촌 빈곤 타파를 역설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을 들었다. 지금은 이들 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나 일제하(日帝下)에서 실의에 빠진 민중들은 못난 우리 조상을 탓하고 원망할 뿐이었다. 3·1운동의 열기는 식어 가고 학자들마저 얼이 빠져 우리 민족의 강한 자존심과 높은 사기는 땅에 떨어져 이렇게 하다가는 나라는커녕 민족마저 사라 지겠다고 생각되던 때였다.

 

公은 실학(實學)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물질적 발전이나 경제적 발전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발전과 인격적 수양을 강조했던 것이다. 公은 실심(實心)을 강조 했지 실물(實物)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진실한 마음, 즉 실심은 실물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모두 물질만 생각하였고 또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公의 국학 연구 가운데 가장 소중한 업적은 단군 연구 이다. 公은 단군이 없이는 한국이 없고 한국인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1930년 좌우익으로 갈라진 민족 진영이 통일에 실패하고 이듬해 일제의 대륙 침략 전쟁(만주사변)이 시작되자 민족의 사기는 한층 떨어져서 실낱과도 같았다. 그러한 때 公은 '5 천년간 조선의 얼' 을 발표하였다. "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얼빠졌다고 한다. 얼빠진 사람은 꺼풀만 남은 사람이다." 담원 선생은 이렇게 말하면서 "사람의 얼은 결코 남이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잃어버리는 것이다"고 하였다. 公은 사람의 죽음 가운데 육체의 죽음(身死)보다 더한 것이 마음의 죽음(心死)이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의 마음이 되살아 나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公은 끝까지 지조를 잃지 않고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한국의 마지막 선비였다. 公의 선비 정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公을 한국의 문화인물로 꼽아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렵게 견디어 낸 암흑시대가 끝나자 즉시 대한민국 건국 준비 사업에 참여하였고, 건국 후 초대 감찰위원장직을 맡아 새 나라의 관기(官紀)를 바로잡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누가 생각이나 하였을까. 1950년 6. 25 남침으로 병상에 누운 公이 북한군에 끌려가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제 다시는 公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우리의 실심(實心)을 잃지 말자"고 한 선생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 할 때인 듯 하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시니

개천절의 노래(정인보 작사)

 

위 와 같이 개천절의 노래 등 수 많은 국경일 경축가(慶祝歌)를 지어 혼란기의 국론통일과 민심 수습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저서(著書)로는 :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 월남 이상재선생전(月南李商在先生傳), 조선문학 원류고(朝鮮文學原流考), 담원 국학산고(薝園國學散藁), 담원 시조집(薝園時調集)등이 있다.

 

담원 정인보 公을 홈페이지, 동래정씨 금주(今週)의 인물, 첫번째 인물로 선정한 배경은 물질 만능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실심(實心)을 강조한 公의 말씀과 일제 강점기에 나라에 큰 인물 시조(始祖) 단군과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그리고 실학자 다산 정약용 등을 강조(强調)하여 국민들의 얼을 일깨운 것이 작금(昨今)의 우리 종중이나 종인(宗人)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름아이콘 정정웅
2012-11-17 09:47
회원캐릭터
잘 보았습니다,새삼 느끼는 바 큼니다.앞으로 더 많은 인물을 찾아서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이름아이콘 정도윤
2013-09-22 23:25
우리 성씨에 대하여 찾고 있었는데 이런 독립운동가가 있다니...... 앞으로 더 많은 동래 정씨위인들을 찾아주세요
   
이름아이콘 정영래
2014-02-22 21:41
이런 글들이 믾이 올라왔으면 좋겠읍니다 감사 합니다
   
이름아이콘 정철수
2015-07-29 09:43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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