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서예
작성자 대종중
작성일 2012-04-23 (월)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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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보 발문

을미보 발문은 동래정씨 족보의 초석을 놓은 세보(世譜)로 1655(孝宗4)년 당시 경주 목사이신 추천공 양필(秋川公良弼)께서 주관하여 발간한 족보의 발문으로 목판(木板)에 행초체(行草體)로 인각(印刻)하여 제작한 명품(名品)으로, 글자의 수려(秀麗)함과 각수(刻手)의 빼어난 솜씨가 어우러진 예술적 작품이며, 글의 내용 또한 명문장(名)이다, 발간 후 사장(死藏)된 보책(譜冊)을 2008년 발굴(發掘)하여 양각(陽刻)으로 제작하여 대종중 회장실에 전시(展示)하고, 액자(額字)로 제작하여 종현(宗賢)들에게 배포한 작품입니다. 

 

                                                     .을미보 발문 주해(註解)

   가만히 생각해보니 씨족에 족보가 있는 것은 예로부터 이다. 대저 조상에 자손이 있는 것은 나무에 가지가 있고 물에 가닥이 있는 것과 같으니 처음에는 한 뿌리와 같은 근원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가지가 갈라지고 물결이 나누어지면 그 근원을 찾고자 함에 착오가 생기고 어지러워져서 두루 알기 어렵게 되니 족보를 만드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정씨는 일찍이 고려조에 복야공으로부터 동방의 대성(大姓)이 되었으나 오래도록 족보가 없으니 어찌 우리 일족의 흠이 아니며 자손들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지난날 1585(乙酉年)년에 임당상공께서 간략하게 족보를 닦아 서문을 붙여 인쇄하였으나 널리 배포하지 못했다. 또 임진왜란을 치루고 난 후에는 오직 그 서문 만이 남아있을 따름이고 오랑캐가 물러간 후 수보(修譜)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선조로부터 유래한 훌륭한 근원의 자취와 후손들의 두터운 정분이 거의 묻혀 밝혀지지 않아 불초가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53(孝宗四)년 겨울에 외람되게도 경주부윤에 제수되어 부임하기에 앞서 영의정 양파상공 인사를 드리니 족보 일을 힘써 하라는 상공의 말씀이 매우 정중한지라 내가 일어나면서 대답하기를『이 일은 제가 뜻은 있으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바이니 감히 받들어 주선하겠나이다.』하였고 부임하여 몇몇 동지들과 더불어 자료를 찾아 모아 고증하고 편집하여 상하 두 편을 만들되 옛적의 족보 만드는 법을 따라 감히 제멋대로 새롭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손(本孫)에 성()을 적지 않은 것은 친손과 외손을 구별하기 위함이요. 외손을 삼대까지만 적은 것은 번거러움을 덜기 위함이다. 분주에 있어 우리 선대를 특히 상세하게 한 것은 아는 대로 기록했기 때문이요. 한 파()편말(篇末)에 따로 실은 것은 그 계보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임당상공께서 지으신 서문을 책 머리에 기재하고 이름난 명공거경의 행장과 비문, 묘지 등을 책 끝에 적은 것은 대저 세에 전하여 감명을 주고자 한 것으로 모름지기 그 편찬의 본뜻을 타당성있게 귀결 짓고자 함이다. 대저 그렇게 한 다음이 족보가 완성되니 차례가 분명하고 자세함과 간략함이 서로 어울려 버지와 아들의 세대와 형제의 행적과 큰집과 은집, 친가와 외손 등의 관계를 이 책을 한 펴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으니 그 조상을 숭모하고 종족을 공경하는 도리에 어찌 조금의 도움이 없다 할 것인가. 족보의 원고가 완성되자 인쇄에 들어가 지난 달에 일을 마치니 다행이다. 이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은 외손인 고양군수를 지낸 송희업과 종생(宗生)인 진사 홍석과 회이다.


 

  오호라! 우리 선조께서 적선으로 가문을 일으킨 경사가 다함 없이 오래도록 이어져 그 후손이 수를 모를 만큼 번성하여 있다. 무릇 사람의 정이란 종족간에도 멀어지면 서먹해지고 더 멀어지면 더더욱 서먹해져 마침내 잊어버리게 되나 이는 그 자신으로 친하고 멀어짐을 생각하기 때문이지 선조를 중심으로 해서 살피면 친하고 소원함이 있을 수 없다. 형의 아들을 볼 혹시 자신의 아들만 같지 못한 적도 있겠지만 자신의 아들과 형의 아들을 아버지의 처지에서 본다면 무슨 다름이 있겠는가. 이렇게 미루어 올라 간다면  모두가 이와 같다. 무릇 우리 자손으로서 이 족보를 펼쳐 보는 이는 능히 선조의 마음으로써 내 마음을 삼고 나를 기준으로 한 멀고 가까움으로 친소를 가리지 아니한다면 효성과 공경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발생함으로써 정이 두텁고 화목한 기풍이 시들지 아니 할 것이니라.

1655(乙未年)년 9월 하순에  21세손 가선대부이며 경주목사 양필이 삼가 책 끝에 씀.


 

  위 글은 동래정씨 세보(世譜)의 초석(礎石)을 놓은 을미보 진본(乙未譜眞本)을 2008년 33세손 재덕(在德)이 발굴(發掘)하여 조상님들의 숭고한 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복원()을미보 발문(跋文) 그 번역문(飜譯文)입니.

이름아이콘 정진수
2015-09-09 12:56
잘 보았습니다...이런게 있다는게 자랑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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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미보 발문 [1] 대종중 2012-04-23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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