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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중
작성일 2012-04-19 (목)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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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75.xxx.143
동평군

 

 

 

동평군

<왼쪽은 반암서당이고 오른쪽 비석과 재실은 양평공의 아드님이신 봉천군을 모신 재실>

경북고령군 덕곡면 원전마을 소재 반암서원.

  

대제학, 판한성부사,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정절공(靖節公)정구(鄭矩, 호는 설학재), 아들이신 동평군(정선경, 아드님인 정종할어버지가  동평군에 봉해지면서 아버지도 동평군에 추증되었음), 손자인 동평군(東平君) 정종(鄭種), 호가 양평이라서 양평공이라고도 함) 3분을 모신 재실.

  

이 건물뒤에는 3분을 모신 사우가 있고, 반암서당의 왼쪽에는 동래3세비가 있다.

  

정종(鄭種)할아버지는 이시애 난, 이징옥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이되어 동평군으로 봉해졌고, 나의 직계 할아버지이신 참판공 할아버지는 둘째로 호가 기우자(騎牛子)이시다.

  

나의 직계이신 참판공(정비)할아버지는 이 마을 건너편에 있는  만하동의 이로재에 모셔져있다.

  

설학재(정구) 할아버지가 계림부윤을 지낸 것과  정종 할어버님이 동평군으로 봉해지시면서 토지를 성주(지금은 고령)에 받으신것, 그리고 이후 경주부윤을 지내신 것들이...

  

우리 집안이 한명회의 독주와 권력투쟁을 피해 서울에서 이거하여 성주(고령)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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