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글
작성자 정재덕
작성일 2012-06-03 (일)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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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공의 상소문
 

정괄(鄭佸)

1435(세종17)-1495(연산군1).  15世 충정공 창손파.



1475년(성종6) 을미년 5월 10일

토목 공사의 폐해와 관리 임용의 문제점에 관한 사간원 대사간 정괄 등의 상소

공(公)이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재임 시 성종 임금께 올린 상소문(上疏文)

신 등이 듣건대 사람의 일이 아래에서 잘못되면 하늘의 재변(災變)이 위에서 나타나며, 잘못이 없는데도 재변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근년 이래로 음양(陰陽)이 고르지 아니하여, 큰 물·큰 바람·큰 가뭄의 재변이 잇달아 일어나서 하늘이 경계를 보이는 일이 한 해뿐이 아니니, 어찌 감응(感應)된 것이 없이 이렇게까지 되었겠습니까?

지금 우리 전하께서 정전(正殿)을 피하고, 찬선(饌膳:음식물)을 줄여 스스로 허물을 인책하시니, 허물을 우려하는 생각이 예전의 밝은 임금들보다 못하지 않으신 데도, 재변을 그치게 하지 못하는 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일은 힘쓰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고, 왕가(王嘉)가 말하기를, ‘하늘에 응답하는 것은 참[實]으로 해야 하고 겉치레[文]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자기 몸을 닦고〈치평(治平)의 공(功)이〉하늘에 사무치게 하는 근본은, 경상(慶賞)·호령(號令) 가운데나 예악(禮樂)·형정(刑政) 가운데에 있지 않고, 임금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니, 그 마음이 바르면 선악(善惡)과 시비(是非)가 앞에 분명하여 사기(邪氣)가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없으나, 스스로 힘쓰지 못하여 생각이 혹 어그러진다면 헛된 겉치레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언로(言路)를 넓게 열어서 아랫사람이 뜻을 모두 말할 수 있게 하시나 말이 대신(大臣)이나 귀척(貴戚:임금의 인척)에 관계되면 따르지 않으실 때가 있고, 성학(聖學)을 존중하고 이단(異端)을 천시하시나 절(寺)을 수창(修創)하는 역사가 잇달아 그치지 않고, 몸소 절검(節儉)을 실행하시나 궁실(宮室)이 혹 장려(壯麗:웅장하고 화려함)하여지기도 하고,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하기에 힘쓰시나 민력(民力 :백성들의 노력이나 재력)이 혹 경솔하게 쓰여지기도 하고, 농상(農桑)을 중시하시나 놀고먹는 중들이 태반이고, 궁금(宮禁:대궐에 잡인의 출입을 금함)을 엄하게 하시나 문안하는 먼 친척들이 부산하게 많습니다.

신 등은 감히 이 몇 가지 일이 오늘의 재변을 가져온 까닭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나, 전하께서 염려하여 살피셔야 할 일은 참으로 여기에 있으니, 원컨대 깊이 유념하소서. 신 등은 또 큰 폐단을 조목별로 아뢰겠습니다.

대저 백성을 지치게 하는 것으로는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보다 심한 것이 없어서, 이것이 원망과 한탄이 일어나는 까닭이 됩니다. 근래에 국가의 영선(營繕:건축물의 신축과 수리)이 번갈아 일어나서, 크게는 대창(大倉)·경회루(慶會樓)의 일과 작게는 여러 가지 수리하는 일이 잇달아 그치지 않으므로 공장(工匠)·역졸(役卒)이 추위·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쉴 사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찰(寺刹)의 역사가 없는 해가 없어, 올해에는 봉선사(奉先寺)를 짓고 이듬해에는 정인사(正因寺)를 지으며, 신륵사(神勒寺)의 수리가 겨우 끝나자마자 회암사(檜巖寺)의 역사가 이어서 시작되니, 그 낭비가 자칫하면 만금(萬金)을 헤아리고 운반하는 수레가 길에 잇달아 있게 됩니다. 복전(福田:복을 거두는 밭)을 바라는 것이라면 전하께서 아니 될 일인 줄 환히 아시는 것이며, 무너지는 것이 염려된다면 중들이 스스로 수리해야 할 것이요, 국가에서 할 일이 아닙니다.

가령 노는 무리를 부리는데 백성에게 무슨 해를 끼치며, 내수사(內需司)의 재물을 쓰는데 나라에 무슨 손실이 있느냐고 할는지도 모르겠으나, 이것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우리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쓸모없는 곳에 써도 되겠습니까? 이제 이런 일들이 만약 국가에 이익이 되더라도 때를 기다려서 일으켜야 할 터인데, 더구나 가뭄을 걱정해야 할 때에 어영차 소리가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그것을 극심하게 본뜨는 것이므로, 종척(宗戚)·귀근(貴近)이 따라서 동화하여, 절을 짓고 금은(金銀)으로 불경(佛經)을 베끼는 등 사치를 다투어 뽐내고, 서인(庶人) 가운데 호부(豪富)한 자도 본떠서 점점 폐풍(弊風)을 이루어 가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서경(書經)》에 ‘무익(無益)한 일을 하여 유익(有益)한 일을 해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이 역사를 빨리 파하여 하늘의 꾸중에 응답하소서. 가의(賈誼: 중국 전한시대 유학과 오행설에 기초를 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주장한 학자)는 말하기를, ‘한 지아비가 밭을 갈아 열 사람이 먹으면 천하에 굶주림이 없으려 해도 될 수 없고, 한 계집이 누에를 쳐서 열 사람이 입으면 천하에 헐벗음이 없으려 해도 될 수 없다.’ 하였고, 한자(韓子:당나라의 문인,정치가)는 말하기를, ‘농사짓는 집은 하나인데 양식을 먹는 집은 여섯이다.’ 하였으니, 놀고먹는 폐단은 예전부터 걱정거리였습니다.

국가의 토지가 넓지 않고 모두 일구지도 못하였는데, 농사짓지 않는 중들이 열 사람 가운데에서 으레 대여섯은 되니, 이것은 곧 서넛이 나누어 농사짓고 길쌈하여서 놀고먹는 무리 대여섯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몸을 적시고 발을 더럽히는 백성은 굶주림과 추위가 제몸에 절박하고, 놀고먹는 무리는 실컷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한 해를 마치도록 여유 있게 지내니, 역시 도리에 어그러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뿐이 아닙니다.

법에는, 불경을 외는 시험에 합격하고 돈을 바친 자라야 중이 되는 것을 허가하게 되어 있는데, 부역(賦役)을 피하느라고 머리를 깍은 자가 수없이 많으므로, 농민은 날로 적어지고 놀고먹는 자는 날로 많아져서 군액(軍額)도 이에 따라 줄어 갑니다. 또 이보다 심한 자가 있습니다. 내불당(內佛堂)·원각사(圓覺寺)·복세암(福世菴)의 중은 앉아서 공름(公廩 :나라에서 관리하는 집)을 소비하고, 선종(禪宗)·교종(敎宗)의 중은 조세(租稅)를 받아먹으며, 그 밖의 큰 절에도 각각 밭이 있으니,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롭게 하는 것이 심합니다.

더구나 지금 서방의 오랑캐가 변방을 어지럽히므로 군적(軍籍)을 충실히 하지 않아서는 안되고, 하늘의 재변이 자주 경계하므로 나라의 저축을 넉넉히 하지 않아서는 안되니, 원컨대 40세 이하의 중들을 찾아내어 다 원적(原籍)으로 돌려보내고, 세 절의 공름을 폐지하고, 모든 절의 밭을 폐지하여, 모두 경비에 보태소서. 그러면 자연히 농민이 많아지고 놀고먹는 자가 적어지며, 나라의 저축이 넉넉해지고 군액이 충실해질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는 민물(民物)을 인애(仁愛)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나 은택(恩澤)이 아래까지 미치지 못하는 까닭은 수령(守令)들이 마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데, 수령들 가운데에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섞여 있는 까닭은 감사(監司)의 출척(黜陟 :등용과 추출)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미(寒微)하고 고단(孤單)한 자는 잘 다스린 공효(功効 :공 드린 보람)가 있더라도 조금만 착오가 있으면 반드시 하고(下考 :말단 의 고가평가)에 두어 색책(塞責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겉으로만 둘러대어 꾸밈)거리로 삼고, 권세 있는 집 자제는 용렬하고 탐오(貪汚)한 자일지라도 그 부형(父兄)을 두려워하여 좌천시키거나 퇴출시키지 못하며, 심지어 염치없는 자들이 권세 있는 사람에게 붙좇는 자는 백성에게서 빼앗아 사리(私利)를 꾀하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고 다하더라도 역시 폄출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간의 속담에, ‘니불(泥佛)은 고을에 있고 원불(願佛)은 서울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수령은 고을에서 하는 일 없이 녹(祿)만 먹고 권귀(權貴)가 서울에서 보호하고 구제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십고 십상(十考十上:벼슬아치의 고과에서 열 번 성적(成績)의 사정(査定)에 열 번 얻은 위의 성적)이 되어 마침내 우직(右職 :현직(現職)보다 높은 벼슬)을 받습니다.

감사가 이처럼 공정하지 않으면 한 도(道)의 인심을 진정하고 수령이 직분을 다하도록 하려 하여도 어려울 것입니다. 감사를 뽑는 일을 중시하여 작질(爵秩:작위와 녹봉)에 얽매이지 말고 정(精)하게 가려서 쓰면, 이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벼슬을 위하여 사람을 택하였는데, 이제는 사람을 위하여 벼슬을 택하는 일이 혹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무릇 아부하는 무리는 꼬리 흔들어 애걸하고 머리숙여 아첨하며 재상(宰相)이 된 자는 자기에게 아부하는 것을 즐거워하여 바라는 대로 좋은 벼슬을 주므로, 한 번 빈 벼슬자리가 나면 제수(除授)하는 글이 내리기도 전에 중외(中外)에서 ‘누가 무슨 벼슬이 될 것이다.’라고 하니, 전형(銓衡)을 위임한 본의에 매우 어그러집니다.

지난번 송관(宋觀)이 부안 현감(扶安縣監)이 되고 서천수(徐千壽)가 안기 찰방(安奇察訪)이 되었으니, 이것이 그 한 증험입니다. 그런데 대간(臺諫)이 그르다고 말하였으나, 전하께서는 그 사람을 교체하라고만 명하고 전조(銓曹: 이조(吏曹)와 병조(兵曹)를 죄주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대신을 우대하는 뜻이기는 하겠으나 권세와 기강(紀綱)을 장악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모르셨다면 그만이겠으나, 혹 아셨다면 반드시 끝까지 밝혀서 그 죄를 바로잡았어야 합니다.

또 조정(朝廷)에 뵈러 오는 야인(野人)·왜인(倭人)이 으레 예조(禮曹)의 당상관(堂上官)에게 토산물을 보내는데, 이것이 폐백(幣帛)을 가지고 상견(相見)하는 예(禮)인 듯하나, 실은 명목 없는 선물을 받는 것이므로, 오랑캐를 접대하는 도리에 아주 어그러지니, 청컨대 이제부터는 받지 말게 하소서.

신 등이 듣건대, 선덕(善德)을 본받는 것은 임금의 직분이고, 선덕을 고르게 다스리는 것은 재상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제 전하께서 밤낮으로 삼가고 조심하여 정성으로 하늘을 섬기시는데도 재변이 도리어 이르는 까닭은, 섭리(燮理 :음양을 고르게 다스리는 것)하는 직분을 맡은 보필하는 대신들이 아마도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나라를 위하여 집을 잊고 공(公)을 위하여 사(私)를 잊고서, 위로는 전하의 미치지 못하는 바를 돕고 아래로는 고(告)할 데가 없는 백성들을 돌보며, 군신(君臣)이 일치하여 직무에 힘쓰고 공경하며 모두 순일(純一)한 덕(德)을 갖는다면, 조정이 바르게 되고 인심이 화목하여 모든 복(福)이 되는 물건과 이를 수 있는 상서가 무엇이고 다 이를 것이니, 하늘의 재변을 어찌 염려할 만하겠습니까?”



이름아이콘 정규헌
2012-11-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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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자료입니다. 대단하신 할아버님 업적,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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