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년 의주 목사 서익이 정여립 등을 논평하여 상소한 기록

선수 19권, 18년(1585 을유 / 명 만력(萬曆) 13년) 5월 1일(신미) 3번째기사

의주 목사 서익이 정여립 등을 논평하여 상소하다

의주 목사(義州牧使) 서익(徐益)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국운이 비색(否塞)하여 사론이 분열되니 처음에는 대단한 정도가 아니었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고질이 되어 논의는 날로 틀어지고 공격은 서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간사한 사람을 공격하더라도 오히려 불행이라 할 텐데 더구나 간사한 사람이 아닌 경우이겠습니까. 신이 계속 저보(邸報)를 보니 한두 대신은 연이어 휴가 중이고 몇몇 어진 재신(宰臣)들은 모두 배척을 당하였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조화시켜 수습하여 사류를 보합하려 하는데 어떤 불량한 자가 다시 이런 쟁단(爭端)을 열었습니까. 길거리에 떠도는 소문을 번거롭게 아뢰는 것이 온당치 않으니 혹시 사실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또한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신이 삼가 들으니 정여립이 경연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이이를 공격하고, 드디어 박순과 정철까지 공격하여 그들이 직책에 편안히 있지 못하고 물러가게 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어도 여립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는 본래 이이의 문하생입니다. 삼찬(三竄)320) 이 내쫓기고 이이가 부름을 받고 돌아왔을 때에 여립은 전주(全州)의 서사(書舍)에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선비가 찾아가 이이의 사람됨에 대하여 논하였는데 여립이 뜰에 있는 감을 가리키면서 ‘공자는 푹 익은 감이고 율곡은 반쯤 익은 감이다. 반쯤 익은 것이 다 익게 되지 않겠는가. 율곡은 참으로 성인이다.’ 하였습니다.”

하고,【이 선비는 바로 이정란(李廷鸞)인데 정란에 관한 기사는 뒤에 보인다. 서익의 집이 은진(恩津)에 있었기 때문에 여립이 사는 곳과 거리가 가까왔고 문도(門徒)들도 서로 잘 아는 처지였는데, 평소 그의 언론이 패란(悖亂)스럽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늘 증오하였다.】 또 아뢰기를,

“변사정(邊士貞)은 천하에 제일가는 선비입니다. 세 현인을 구제한 상소문은 만 세에 전해져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이발은 일찍이 이이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논의가 일치하지 않게 되자 끝내 공격할 뜻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정사를 멋대로 독단하면서 옳지 못한 인물을 끌어들여 조정에 환란을 조성하였으니, 이는 이발의 죄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신이 부름을 받고 도성에 들어왔을 때에 이이는 이미 병석에 누워 있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여립이 이이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그 편지에 ‘삼찬(三竄)이 비록 내쫓겼지만 아직 큰 간인(奸人)이 남아 있으니 뒷날의 환란이 지금보다 더 심각하여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는데 큰 간인은 유성룡을 지목한 것이었습니다.【여립은 본래 이발과 형제처럼 친밀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이발이 상을 당하고 이이가 논박을 받음으로써 다시 서인(西人)을 기용하여 차츰 세력을 얻게 되자 여립은 이발 때문에 누를 입을까 염려하였다. 이리하여 밤중에 전주 부윤(全州府尹) 심의겸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조정에서 삼찬(三竄)을 유배시킨 것은 잘된 일이다. 다만 이 일은 필시 이발이 주도한 것으로서 세 사람은 지엽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이 말에 심의겸은 대답을 하지 않고 편지로 윤두수에게 고하기를 ‘정여립이 지금 이발을 얽어넣으려고 하는데 그는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일이라도 할 만한 위인이다.’ 하였다. 여립이 이른바 큰 간인이라고 한 것은 꼭 유성룡을 지목한 것이 아닌데 말하는 자들이 짐작하여 만든 말이다. 그 뒤에 여립이 말하기를 ‘내가 지목한 사람은 바로 홍혼(洪渾)이다.’ 하였는데 홍혼이 김효원(金孝元)의 논의에 붙좇았지만 사론의 존중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 말도 여립이 꾸며댄 말이었다.】 신은 혼자서 생각하기를 ‘정가(鄭哥)의 기습(氣習)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구나. 사람에게 문로공(文潞公)의 일321) 로 권면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를 논했다고 죄주기를 권면한단 말인가. 더구나 유성룡은 본래 이이를 공격할 사람이 아닌데 어찌 감히 그럴 수 있는가. 전에도 같은 정여립이고 지금도 같은 정여립인데 어떻게 오늘에 와서 직접 이이를 매도하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를 수 있는가. 사우(師友)간의 정의가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가 서로 다르고 언론과 풍지(風旨)가 형편에 따라 향배를 달리 하면서 「나는 글을 읽은 군자이다.」 한다면 어느 사람이 믿겠는가.’ 하였습니다.

신은 삼가 듣건대 어떤 자가 이이의 심사(心事)는 의심스럽다고 논하였다는데 군자는 한 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에도 부모를 잊지 않는 것이니, 이 말을 한 사람은 부모가 없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이가 심의겸과 교제한 한 가지 일은 의심스럽다.’ 하였다는데, 이이가 심의겸과 교제한 것이 과연 죄가 된다면 왜 그 당시에 논하지 않고 도리어 이이의 문하에 분주히 드나들며 제자 노릇을 하다가 오늘에 와서야 이 일을 끌어대어 공격의 자료로 삼을 수 있습니까. 신이 전에 유성룡과 함께 이이의 사람됨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유성룡이 ‘평탄하고 화평한 성품이 그의 장점인데 아쉬운 것은 개혁하기를 좋아하는 점이다.’ 하였습니다. 아,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어찌 평탄하고 화평스런 성품을 가진 소인이 있겠습니까. 만약 그의 행사에 대해 논하기를 ‘엉성하고 부족하다.’고 한다면 신처럼 이이를 존경하는 자도 쌍수를 들고 수긍하겠지만 그의 심사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면 온 나라 사람들이 너나없이 그렇지 않음을 보장할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송응개(宋應漑)의 말은 모두 황당하고 망령되었습니다. 그러나 간관(諫官)이라 명칭하여 말하라고 해놓고 어찌 다시 죄줄 수가 있겠습니까. 허봉(許篈)은 명인(名人)의 아들로 문장의 재능을 지녔고 득의한 것은 많지만 실제로 일을 겪은 경험이 적으니, 비록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무거운 벌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누구 하나 전하의 신하 아닌 자가 없는데 형극(荊棘)의 길을 열어 이매(魑魅)의 귀신을 막게 변방으로 귀양을 보낸단 말입니까. 작년 대사면에도 삼찬은 방면시키지 않았는데 신이 그때 옥당에 대죄하고 있으면서 동료들과 함께 차자를 올려 진달하려 했다가 정철이 먼저 상신(相臣)에게 말하여 전하께 그 뜻을 진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중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박순이 궐문에서 상신에게 말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뒤의 일에 대하여는 신이 외임으로 나갔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정철이 술을 즐기는 것은 흰 옥의 작은 티로서 다른 산의 빛깔만 깨끗한 돌에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처럼 현격합니다. 이산보(李山甫)·박점(朴漸)의 효제 충신(孝悌忠信)은 노복들도 다 알고 있는데 말하는 자들은 용렬하다 하였습니다. 산보의 충후 근신(忠厚謹愼)함은 그의 가문의 법도로서 계부(季父) 이지함(李之菡)도 일찍이 경외하였던 바입니다. 다만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어 언어가 뚜렷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의 비방을 받는 것이 혹시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좌의정 노수신(盧守愼)은 성명(聖明)을 만나 묘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림을 합일시키고 조정을 화합하는 것이 바로 그의 마음이니 지금 급급하게 사면하려는 뜻을 갖는 것은 어찌 그 까닭이 없겠습니까. 수신은 두터운 덕망을 지닌 자로서 처음부터 동서 양쪽에 간여한 일이 없기 때문에 양쪽에서 제각기 자기네를 도와 의지가 되어주기를 기대하였는데 결국 그렇게 되지 않자 양쪽 모두 불평하는 뜻을 품게 된 것입니다. 수신으로서는 양쪽을 모두 보존하려 할 경우 조정에서의 공격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한쪽은 보존시키고 한쪽은 제거하려고 한다면 모두 사류인데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화합시켜 보존하고 진정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먼저 삼찬(三竄)을 석방하여 집에서 늙게 하고, 다음은 근시로 있다가 외지로 나간 자를 소환하여 다시 좌우에 두고, 박순·정철을 위안해주고 그 직책을 회복시키소서. 그리고 대신과 여러 재상과 근시들을 앞에 불러놓고 분부하시되 온화한 얼굴과 누그러진 말씀으로 가슴을 터놓고 정성을 다하여 의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밝히고 동인 협공(同寅協恭)의 미덕으로 타이른 뒤에 조용하고 겸손한 자세를 장려하고 들뜨고 조급한 습관을 억제하며 화평하고 공정한 인물은 진출시키고 부망(浮妄)하고 경박한 무리들은 물리치소서. 그렇게 하는데도 양쪽에서 전처럼 조용하지 않은 자가 있을 경우 법으로 다스려 용서하지 않는다면 1년 사이에 조정이 안정되고 사론도 귀일될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전하께서 심의겸을 간사한 무리들의 괴수이고 그와 교제하는 자는 모두 그르다고 하셨지만 아무 탈없이 황금의 띠를 두르고 여전히 재상의 반열에 있으니, 죄가 없는 듯합니다. 만일에 죄가 있기는 하나 선후(先后)의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에 차마 형벌을 가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형정(刑政)은 조종(祖宗)께서 정한 바인데 어찌 그것을 무시하고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 죄상이 오히려 용서할 만하다면 마땅히 산직(散職)으로 보내 녹봉이나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어찌 뚜렷이 말을 하여 그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마냥 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몸둘 바를 모르게 하십니까.”

하였는데 답하기를,

“네 상소를 보건대 생각이 있으면 기필코 진달하는 뜻이 있으니 내가 가상하게 여긴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상소를 보니 그 말이 궤탄스럽고 황홀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대개 내가 말하는 현자(賢者)란 이이와 성혼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을 공박하는 자들은 반드시 간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유성룡도 군자임이 틀림없는데, 나는 그를 오늘날의 대현이라 하더라도 가하다고 여긴다. 그를 바라보고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감복하는 때가 많다. 어찌 그러한 학식과 기상을 가진 자가 큰 간인일 수가 있겠는가. 어느 담 큰 자가 그런 말을 하였는가. 그러나 나는 혼미하고 용렬하며 무식하니 어찌 감히 내 견해만을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여립의 위인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 차례 접견하여 그의 위인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런데 큰 기개를 가진 자인 듯하였으나 실지로 어떤 인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여립도 사체(四體)를 갖추고 있거늘 어찌 예판(禮判)을 큰 간인이라 지목하여 차마 그 입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여립이 이이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한 것은 서익의 말이 근거가 있는 듯하다. 대저 인정이 분분하게 됨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하였다. 훗날 상이 경연에서 좌우에 하문하기를,

“여립이 이이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하는데 경들 중에 혹시 그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니, 이덕형(李德馨)이 대답하기를,

“신과 같은 마을에 사는 이귀(李貴)가 전에 그 글을 신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하고, 김홍민(金弘敏)은 아뢰기를,

“신도 이귀가 전송(傳誦)해 주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여립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형편없는 인물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25책 540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 *왕실-경연(經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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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320]삼찬(三竄) : 계미년(1583 선조 16년.)에 북방에 이탕개(尼湯介)의 사변이 있었는데 이이(李珥)가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사세가 급박하여 임금에게 아뢰지도 않은 채 말을 바치게 하고 신역을 면제시켰었으며, 임금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나가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생겨 내병조(內兵曹)에서 지체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송응개·박근원·허봉 세 사람이 이 일을 가지고 ‘일을 제멋대로 하고 주상을 무시하였다.’고 하여 탄핵하다가 각각 회령·갑산·강계로 유배당하였다. 이 사건을 계미 변란(癸未變亂) 또는 계미 당사(癸未黨事)라 하고 이 세 사람을 계미 삼찬(癸未三竄)이라고 한다. 《선조실록(宣祖實錄)》 권17. ☞

[註 321]문로공(文潞公)의 일 : 문로공은 송나라 때 노국공(潞國公) 문언박(文彦博)이다. 전중 시어사(殿中侍御史) 당개(唐介)가 시사(時事)에 대해 간하기를 ‘문언박은 궁중에 뇌물을 바치고 대신이 되었으니 파면시켜야 한다.’고 탄핵하였다. 이에 인종이 노하여 그의 주의(奏議)를 보지도 않고 유배시키려 하자 당개가 ‘충분(忠憤)이 격하면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어찌 유배를 거절하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당개는 유배되고 문언박도 파면되었는데 나중에 문언박이 다시 등용되어 황제에게 ‘지난번 당개가 말한 바는 실제로 신의 병통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를 조정으로 부르소서.’ 하였다. 《송사(宋史)》 권316 열전(列傳)75 당개전(唐介傳). ☞

출처 :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