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우리의 조상님들이 1655년 을미보와 1716년 병신보를 발간하기 위하여  제작한 족보목판으로  시대의 앞섬이나 글자의 수려함, 각수의 판각기술 등 독보적인 문화유산이라서 금번 대종중에서 도록(330쪽)을 칼라본으로 발간하게 되었으며 , 위 보판의 찬사는 저의 필설로 부족하여 국립고궁박물관 관장 정종수님의 축간사로 대신합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족보판(族譜板)이 남아 있었을까!

    평소 알고 지내던 일가인 정용호씨가 아직 편집이 덜된 가제본 한 권을 들고 박물관으로 찾아오셨다.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우리 문중의 동래정씨 족보판 자료집이란다. 자세히 보니 을미년(1655년)과 병신년(1716년)에 족보를 간행할 때 썼던 목판 자료를 모은 것이었다.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근무할 때 일이다. 나는 경북 칠곡군 지천면 연호1동 존경당(尊敬堂) 곁 보판각(譜板閣)에 보관하고 있던 병신보 판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우리 문중에 이런 것이 다 있나 하고 말이다. 마치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각을 보는 것 같았다. 문집을 내기 위해 만든 판각을 보관한 경우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족보를 찍었던 목판을 잘 보관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건 우리 동래정씨 문중의 자랑이기에 앞서 나라 전체의 큰 보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족보판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였다. 일 년에 외국 인만 백만 명 내외국인 합쳐 2백오십 여 만 명 이상 오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전시를 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운이 닿지 않아서 그런지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 동래정씨 병신보판이 민속박물관에 전시(展示)만 되었어도 가만히 앉아 우리 문중 홍보는 물론 나아가 우리나라 목판 인쇄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눈앞에서 놓쳐 버린 것이 지금도 안타까울 뿐이다. 현재 이 병신보판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보관 중이다. 우리 문중의  병신보판과 을미보판은 다른 문중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자료다. 제작 연대 또한 이를 뿐만 아니라 병신보판과 같은 경우는 족보판 일습(一襲)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 문화적 가치도 훨씬 크다.

족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나의 근본 즉, 뿌리인 조상을 기록한 책이다. 나와 조상을 연결해주는 우리 몸의 동맥과 같은 것이 족보다. 우리 동래정씨의 족보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585년(선조 18년)이다. 좌의정이던 임당공 정유길이 그 오대조 판서공 이하의 세보(世譜)를 처음 만들었는데, 임진왜란 중에 훼손되어 그 서문만 남아있다. 그 후 70년 만에 추천(秋川)공 정양필이 경주 부사가 되어 당시 영의정 양파(陽坡)공 정태화(임당공 유길의 증손)에게 인사차 들렀다가 족보 편찬을 부탁 받았다. 이것이 1655년(효종6년) 을미년 8월에 간행한 을미보이다. 현재 을미보판은 경북 고령군 덕곡면 만화동 기우자공(騎牛子公) 재실에 보관 중이다. 숙종 42년(1716년)에 간행된 병신보는 동래세보 5권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은 당시 경주부윤 정필동이 지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족보는 왜 만드는 걸까. 그 답을 멀리서 구할 필요도 없다. 1655년 을미보

를 편찬한 21세손 가선대부 경주목사 정양필이 쓴 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아아! 우리 선조님께서 선을 쌓아 가문을 이룬 경사(慶事)가 유구하되 더욱 그치지 않고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과 같은 바 수(數)는 억(億)이 아니로다. 무릇 사람이 종족(宗族)간에 대하는 멀리하면 더욱 소원하여 잊어버리는 데까지 이르나니 형의 자식보기를 자기자식과 같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의 자식과 형의 자식을 어버이가 볼 때에는 다름이 있겠는가? 윗사람들은 모두가 다 그러하니 미루어 나의 자손(子孫)들로서 이 보첩을 보는 사람은 선조의 마음을 본받아 자기와 멀고 가까움으로써 친하고 정들게 한다면, 효도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며 돈목하는 풍습이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이보다 족보의 편찬 목적을 잘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현재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보관 중인 병신보판과 고령에 있는 을미 보판은 우리 동래정씨 문중의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침이 없다. 대부분의 타 문중의 보판들은 거의 유실되어 우리 동래정씨의 병신보판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 없다. 이렇게 보판을 만들어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거기에는 남모를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노력과 정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노고의 결정판 하나가 바로 이번에 출간되는 을미보와 병신보의 판각을 모아 출판 하는 동래정씨세보 보판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경북 고령에 있는 을미보판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된 수백 개의 병신보판을 꺼내 하나 하나 사진 찍고 정리하여 책을 내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그야말로 문중에 대한 애정 하나로 발로 뛴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같은 문중의 한 사람으로 송구스런 마음뿐이다. 특히 자신의 일보다도 문중의 일, 아니 족보 자료집 발간에 더 많은 정성과 애정을 쏟아 붇고 계시는 종현(宗賢)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이번 일에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동래정씨 대종중 정진호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도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드림니다.

아울러 다시 한번 동래정씨 을미보, 병신보 족보 판각 자료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2010. 9

국립고궁박물관 관장   정  종  수 근서